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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1. 줄거리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2016년 7월 27일 개봉한 이재한 감독의 흥행작 입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1950.9.15년 북한의 남침으로 일어난 6.25 전쟁 중 남한의 작전 중 

하나였던 인천상륙작전의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북한군이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오는 방어선을 사수하기 위해 국군과 UN군이 공방전에 다다른 

1950년 9월 맥아더 장군은 5000:1 이라는 불가능한 수치라는걸 알지만 그 수치를 뒤로하고

인천상륙작전 이라는 작전을 세우며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행하기 위해서 총 8명의 첩보원을 

북한으로 보내며 북한군으로 위장시켜 당시 인천의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하달하게 된다.

그렇게 첩보부대의 작전은 무탈하게 흘러가는 듯 하지만 북한군에게 첩보부대의 정체를 

들키게 되었고, 그 과정속에서 탈출을 시도했지만 그 과정속에서 2명의 전사자가 생기게 되었다.

이후 맥아더 장군은 인천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지만 그 정보는 그렇게 달가운 정보는 아니었다.

인천의 수로는 좁을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손꼽힐만한 최악의 조수간만차로 인하여 맥아더 장군에게

주어진 시간은 2시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아더 장군은 7만 5천여명의 연합군과 261척의 함정이 투입된 대규모 작전을 

인천의 악조건 속에서 시작하게 된다.

그 결과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었고, 6.25전쟁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작전이 되었으며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은 수많은 대한민국의 청춘들과 연합군의 목숨으로 승리를 거머쥐게 되었다.

 

 

2. 인천상륙작전 역사적 배경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역사적 배경은 남북전쟁인 6.25전쟁 중 1950년 9월 15일~ 1950년 9월 16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6.25 전쟁이 일어나게 된 이유는 우리나라는 35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일본에게 식민지 국가로서 

일본에게 지배를 받던 일제강점기의 시기를 지냈다.

일제강점기 시기 동안 우리 대한의 선조들은 독립을 위해 힘써봤지만 우리나라는 독립이 우리의 힘이 아닌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를 맞이하게 되면서 독립을하게 되었고, 민주주의 성격을 갖고있는 미국과

공산주의의 성격을 갖고있는 소련이 우리나라를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38선을 기준으로 반으로 나누게 된다.

같은 민족이었던 조선인들은 본인의 이념에따라 나누어지게 되었고, 이후 시간이 지난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경 북한군은 암호명 '폭풍224'라는 계획으로 선전포고 없이 기습 남침하여 발발하게 되었다.

6.25 전쟁의 원인으로는 크게 4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는 대한민국과 북한이 추구하는 이념이 다르기에 생긴 이념적 갈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민주주의를 수호하며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였습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북한은 민주주의가 아닌 소련의 지원을 받는 공산주의를 수호하는 국가였기에 서로

이념적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대한민국과 북한은 서로 다른 이념적 갈등이 심화 되었습니다.

두번째는 국경선 분쟁입니다. 대한민국과 북한은 38선을 기준으로 분단 되었습니다.

그렇게 대한민국과 북한은 양측 간 국경선에 대한 분쟁이 끊임없이 지속되었고, 이로 이해

군사적 충돌이 발생 하였습니다.

세번째로는 군사적 불안정 입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북한과 비교 하였을 때 군사적으로 불안하고 불안정적인 

상태였습니다.

물론 대한민국은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재건 되었지만, 군사력은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반면 북한은 소련의 지원으로 대한민국과 비교한다면 안정적이며 꾸준히 군사력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네번째는 국제정세의 변화입니다.

6.25 전쟁 이전에는 국제정세는 냉정 상황이었습니다.

이런한 상황 속에서 대한민국과 북한은 서로 다른 이념을 수호하고 있었기에 냉전 상황에서도 대립이 심화 되었습니다.

 

 

3. 총평

인천상륙작전 영화를 보면서 느낀점은 남북전쟁 당시 우리나라는 단 4일이라는 시간 만에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이 함락되었고,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난뒤에는 낙동강을 제외한 전 지역을 빼앗기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작전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했을까?

라는 의문점을 갖게 되었고, 말도 안되는 확률의 작전이 성공하는 과정이 대단하며 선조들에게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또한 우리나라는 광복이라는 시간 또한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낸것이 아니라는 점이 마음이 아팠지만 6.25 전쟁은 

광복 이후 불과 5년이라는 시간 밖에 지나지않고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점이 마음이 아팠고,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하며 서로의 목숨을 빼앗는다는 점이 속상했다.

대한민국과 북한은 서로 추구하는 이념을 달랐어도  그 당시 공통적으로 원하던것은 통일이었다

서로 같은 목표를 갖고 있었지만 그 과정이 전쟁이라는 점이 아쉬웠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목숨을 잃었고, 수많은 사람들은 원치 않게 가족들과 떨어지게 되어 이산가족이 생기게

되었다.

그 결과 아직도 이산가족을 그리워하며 끝까지 가족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6.25 전쟁은 그 어떤 국가가 피해를 많이 입혔으며, 입었나를 따지는것은 아무 의미 없다는 생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