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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산  용의출현의 배경

한산도 대첩 혹은 견내량 대첩 : 1592년 선조 52년 7월 8일 통영 한산도 앞바다에서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크게 무찌른 해전으로, 이 전투에서 육전에서 사용하던 포이 섬멸 전술 형태인 학익진을 처음으로 해전에서 펼쳤다

진주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린다

 

한산 용의출현 영화의 전작인 명량의 프리퀄을 담은 작품이다

1592년 4월, 조선은 임진왜란 발발 후 단 15일 만에 왜군에게 한양을 빼앗기며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다. 조선을 단숨에 점령한 왜군은 명나라로 향하는 야망을 꿈꾸며 대규모 병역을 부산포로 집결시킨다. 한편, 이순신 장군은 연이은 전쟁의 패배와 선조마저 의주로 파천하여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도 조선을 구하기 위해 전술을 고민하며 출전을 준비한다. 

 

견내량은 거제도와 통영만 사이에 있는 긴 수로로 길이 약 4km에 넓은 곳도 600m를 넘지 않는 데다, 암초가 많아 판옥선이 운신하고 전투를 벌이기에 좁은 해협이었다. 반면 한산도는 거제도와 통영사이에 있어 사방으로 헤엄쳐나갈 길도 없고, 한산도는 당시 무인도나 다름이 없는 섬이었기 때문에 궁지에 몰려 상륙한다 하더라도 굶어 죽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2.  한산 용의 출현의 줄거리

1592년 4월 13일 부산성에 왜적들이 쳐들어와 무너뜨리고 20일 만에 수도 한양까지 순식간에 점령한다 

조선의 임금 선조는 북쪽으로 피신을 하고 파죽지세로 왜군은 북상하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사천 당포 당항포 싸움을 이끌던 이순신장군의 뜻밖에 첫 전쟁 사천에서 총상을 입게 되고 거북선 또한 손상을 입게 되어 조선은 수세에 몰리며 위기의 순간을 맞게 된다

기세를 잡은 왜군 아키자카는 조선을 넘어 명나라까지 야망을 넓히며 대규모 병력을 부산포로 집결시킨다 

이에 이순신은 7월 5일 전선48척을 여수 앞바다에 집결시켜 합동훈련을 실시하였고, 다음날 원균의 함선 7척이 합세해 조선은 총 55척이 되었다  전라좌수영, 전라우수영, 경상우수영의 각 장수 등의 능력에 맞춰 학익진도를 완성하고 새벽이 되자 전 함대를 한산도 앞바다로 출정시킨다

새벽안개가 자욱한 견내량, 왜군 와키자카는 중앙 본진에서 이순신장군의 함대를 기다리며 좌우에 왜선을 매복시켜 놓는다

이순신의 함대는 첨자진을 펼치며 한산 앞바다에 주둔한 상태로 유인선 3척을 견내량 내부로 투입하여 적진을 도발한다

안개가 걷히고 서로 맨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 거리에서 대치하게 되어 견내량의 가장 좁은 해협까지 유인하고 판옥선은 거친 물살에 원할히 지나가지만 세키부네는 암초에 걸려 좌초된다. 와키자카는 유유히 해협을 빠져나가는 조선함대를 보고 한산 앞바다까지 본대의 진격을 명령하고 이순신의 거짓 후퇴와 학익진을 지시하는 신호연을 띄운다 뒤쳐진 원균의 함대가 추격을 받자 겁먹은 원균은 발포해 버린다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는 중 거북선의 등장으로 왜선들은 당황한다 

거북선은 충각 전법으로 닥치는 대로 부수며 한산바다를 웅장하게 수놓는다

신형거북선의 등장으로 설계도를 훔쳐 거북선의 단점을 파악했다고 생각한 와카자카는 그제야 신형 거북선이 이순신이 숨겨둔 비장의 무기였음을 깨닫고 배배를 직감한다

거북선의 활약으로 위협이 사라진 조선함대는 학익진을 완성하고 마치 판옥선을 성벽을 쌓은듯 했고 이순신은 발포를 명한다

일본 함선들은 피할 틈도 없이 모조리 격침되고 인명 살상에 특화된 조란탄에 병사들까지 쓸려나간다

그나마 철갑으로 선체를 도배하여 포격에 살아남은 와키자카의 기함이 이순신의 대장선으로 돌진하여 들이받으려 하지만 측면에서 신형 거북선이 기습하여 충파를 당해 오도 가도 못하게 된다. 함대를 전멸시켜 와키자카에게 집중 포격하게 되니 도주를 결심하고 바다에 뛰어든다

해전은 마침내 대승을 거둔다

 

 

 

3.  한산 용의출현의 감상총평

해전 중 거북선이 등장해 좌우 사방을 다니며 격파할 때 초등학생들이 거북선이 되고 싶다는 말을 했다는데 나 역시 "나도 거북선이 되고 싶다"며 울먹거림. 왜선이 코앞에 올 때까지 기다리다 동시에 학익진을 펼치는 그 순간  장군들의 기백에 다시 한번 감사하게 되었다 나 같은 쫄보는 진즉에 돌아섰을지도~~ 그러니 명량의 후기에도 썼지만 난 노 꾼 만 해도 감사인 간을 가진 일반인이다

한산도대첩 또는 견내량대첩 이라고 불리는 한산대첩은 임진왜란 3대 대첩의 역사를 기억하고 다음 노량에서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쟁 영화를 기대해 본다